"저의 짧은 생각과 인생의 제한으로 이른 데가 여기이오니 하나님이 정하신 바가 있으시면 그 일을 이루어 주십시오"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지, 자기의 생각을 절대화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을 꼭 들어주셔야만 하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외람된 생각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꼭 주신다고 믿지 못하는 것을 죄송하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기도는 그런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바로 들어주시지 아니하는 때에는 이 기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가까운 것인가를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허한 두뇌와 심정을 가지고는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기도할 때에는 자기 기도를 반성하고, 반성하면서 또 기도하고 생각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대답하실 때 그 대답을 충분히 들을 만한 위치, 대답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중요히 다시 배워야 할 것은 어떤 기도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 (이 약속들은 자녀에게 주신 것임) 약속해주신 것들이므로 구하면 주심.
"너희 중에 누가 지혜가 부족하거든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약 1:5)
"네 짐을 여호와께 말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3:1~2)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3:3~4)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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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덮어놓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덮어 놓고 주면 그에게는 그것이 그냥 은혜이지 권리가 안됩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은 명문으로 약속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깨달은 사람은 그만큼 더 풍성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의 세계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 그 약속의 전제 조건으로 내놓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3:3~4)
풍성한 진리가 항상 그에게 있고 인자가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이신다는 말입니다. 만사에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겠는가" 하고 매번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자기와 관련된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살핌으로써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법칙에 깊이 관련된 일에 대해서 기도를 할 때는 대부분 일반법칙이라는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일반법칙에 대해서 사람들은 보통 두가지 태도를 취합니다. 첫번째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인과관계 안에서, 과학적인 면 안에서 생각을 하여 단념을 하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시니까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사 과거에는 한번도 이런 일이 안 일어났지만 이번 한번은 예외적으로라도 여기 큰 능력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하고 일이 파탄이 날 때까지는 기도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신령한 자. 하나님 앞에 충실히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기도의 동기가 어디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도의 동기 즉 자기 마음 가운데 이번에는 내게 예외가 와야만 하겠다고 간절히 구하는 것이 인간적인 행복 추구나 이기적 동기에서 나온 것인가 아닌가를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념을 한다고 할 때도 그게 어떤 동기에서 나오는 것인가. 항상 자기의 동기와 자기의 심상을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일반법칙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께서 관장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바울 선생이 자기를 찌르는 가시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고 난 후에 그 환희에 가득찬 보고를 보면 모든 관심이 자기의 행/불행에 있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그 크신 경영과 영광의 내용이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전진하느냐에 집중해 있었던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이 이제 필요하겠느냐" 그것입니다.
사람은 보통 어떤 현실상 큰 문제에 임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뒤로 가고 항상 그 문제가 해결되어 거기서 빠져 나와야 하겠다는 생각이 자기를 압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자는 생활 가운데 닥치는 어떤 사실에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방도로서 이것이 그렇게 되어야 겠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거기에 의지해서 호소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와 영광을 땅 위에서, 역사 위에서 진전시키는 그 일을 위해서 이렇게 하셔야만 하겠다고 믿는 까닭에 그것을 구하고 또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어떠한 일정한 인생의 목적과 필요들이 먼저 오고,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정당한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믿음이 우리 안에서 제대로 작용하느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전체의 경영을 늘 간절히 사모하고 그것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데에 터를 두고 있을 때에 비로소 깊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우리가 믿음을 어떻게 얻느냐 할 때 그리스도의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시는 그 거룩한 내용. 하나님 나라의 여러 가지 진리의 내용을 주의해서 배워야 믿음이 생기는 것이지, 기도를 방편으로 "주님, 믿습니다. 주님,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이루어 주신다고 했으니까" 하고 그 말만 들고 다니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백 번 외운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항상 기도의 목적이라든지 동기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능력이 땅 위에서 증시되어 나가는데 내가 그 그릇으로 쓰이기 위해서 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 살기를 바라시는데, 그 위치라는 것은 나 자신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행복스러운 위치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행한 위치에 서야만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든지 인격적으로든지 도덕적으로든지 물질적으로든지 행복스러운 위치에 세워 놓으시고서 영광을 나타내시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건실하게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가장 힘써 일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성경의 약속에 "너희가 밤낮 배를 곯아야만 내가 영광을 받겠다"고 한 데가 없습니다. (물질의 문제에 있어서 빈곤에서 밤낮 두류 방랑하며 고통받아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동양의 금욕주의적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일단 박해가 있다든지 특별한 큰 증거를 해야 할 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나서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아무것도 돌아볼 것 없이 나서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선구자들이 얼마나 산과 들로 두류 방랑하고 옷 입는 것도 제대로 다 입지 못한 사람들이었던가를 가르치면서 그들을 일컬어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이 아님. 특수한 상황이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시는 사람들임)
- 기도하는 목적이라든지 내용에 대해서 기본 심상이 발라야한다.
-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늘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믿고 기도해야 한다.